통속(1)의 재구성
김용선의 개인전 <구로동 429-xx>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상과 16점의 사진을 통해 작가와 그 가족들이 유년기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장의 입구를 들어서며 마주하게 되는 일련의 사진 작업들은, 작가의 가족들과 그 흔적을 담고 있다. 사진들은 스냅치고는 꽤나 정갈하게 프레이밍되어있었는데, 많은 스냅사진들이 그렇듯 개념적인 측면이나 조형적인 측면의 통일성보다는 뷰 파인더 뒤의 인물, 그러니까 작가의 시선의 결이 강조되어있었다. 곁에 있고, 항상 들여다보고, 순간 순간을 놓치지 않는 시선만이 붙잡을 수 있는 시공간.
그리고 안쪽 방에서 상영되고 있는 중편의 다큐멘터리 영상에서는, 사진 속에서 침묵하던 피사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오래 걸렸습니다.”
2023년 2월. 동생의 상견례에 참석코자 십 여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형아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아버지의 납골당이다. 아버지의 유해 앞에서 눈물을 훔치는 그의 표정에는 알 수 없는 멋적음이 배어있다. 한스러움도 후회스러움도 원망스러움도 아닌 멋적음. 그의 표정이 멋적은 이유는, 얼음덩이 때문이다. 삼키지도 뱉지도 못할만큼 크고 단단하고 차가운 저 얼음덩이는, 오래 오래 그의 목구멍에 걸려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둘째 아들(2)은 십여 년 간 이산해 있던 그의 가족들이 자신의 상견례를 위해 한데 모인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자신을 포함하여 가족들 모두의 목구멍에 묵직하게 걸려있을 그 얼음덩이를 녹여내는 방편으로써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다.(3) 그것은 창작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소명이었으리라.
“형아 오기 전에는 장례를 치르지 마라.”
형의 입국을 계기로 동생은 가족들을 인터뷰하고, 엄마와 형은 각자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조심스레 끄집어낸다. 아버지는 재앙이었다. 엄마와 형의 기억이 퍼즐처럼 맞춰지고, 동생의 현장(4)검증으로 그 재앙의 흔적이 증명된다. 오랜 시공간을 뛰어 넘어 이들은 그 재앙의 부재를 공식화 하는데, 그것은 사망을 선포하는 사회적인 의미의 장례나 유해를 처리하는 물리적인 의미의 장례가 아닌, 저 재앙이 남긴 상흔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는지를 타진하는 감정적인 의미의 장례식과도 같아보인다.
신중한 태도로 각자의 손에 들린 기억의 조각들을 한 점 한 점 바닥에 내려놓으며 퍼즐을 맞추는가 싶던 이들의 인터뷰는, 아버지라는 퍼즐의 국지적인 특정 부분, 그러니까 이들이 뿔뿔히 흩어져 지내게 된 계기인 ‘재앙으로서의 아버지의 모습’을 확인하는 데에서 멎는다. 아버지에 대해 이들이 가지고 있을 그 이외의 기억들을 지금 확인하는 것은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같은 사건에 대해 같은 기억을 가지고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는 정보이다.(5) 그 정보는 이들이 이산離散해 있던 시공간을 가로지르고 있는 저 어둡고도 깊은 상흔을 봉합해준다.
그 봉합된 대지가 과연 ‘아버지의 폭력’이라는 사건을 둘러싼 총체적인 진실을 담고 있는지는 아직 중요하지 않다. 오직 땅 위에 발 디딘 사람들만이 자신이 발 디딘 땅의 정체를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목한 가정'이라는 통속의 신화를 해체하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가치있는 일일 수 있으나, 그 신화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게 ‘화목한 가정'은 삶을 걸고 재구축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상이다. 그러므로 구로동 일가족에게 시급한 것은, ‘우리가 함께 어딘가에 발 디디고 있다’는 가정假定에 대한 상호 간의 동의였는지 모른다.
“뭐라도 기념을 해야 돼. 우리는.”
둘째 아들과 조카가 ‘무궁화 꽃’ 놀이를 하는 씬(6)을 기점으로, 카메라는 이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덤덤히 기록한다. 렌즈 앞의 인물들은, 구성원의 생일파티를 하고 노래방에서 트로트를 부르고 상견례에 참석하고 가족사진을 찍는 등의 소박한 ‘일가족’의 행사들을 치루는데, 이 일련의 시간들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유감없이 통속적이다. 상견례 자리의 화기애매한 덕담들, ‘웃으면서 마무리하자’는 카메라맨의 너스레. ‘이제는 아무 것도 그리워 말자’는 대중가요의 가사. 동생의 어리숙함을 나무라는 형의 욕지거리. 취기를 빌어 서로에게 던지는 핀잔 섞인 애정의 말들…. 이 통속적인 순간들이야말로, 이들이 어렵사리 봉합해 낸 작은 대지 위에서 가장 먼저 누려야 할, 기념비적인 시간들인지 모른다.
“오디오가 물리잖아 지금.”
이들은 울고 웃는다. 웃고 있는 이의 곁에서 훌쩍대며 눈물을 훔치고, 울고 있는 이의 곁에서 하하하 웃는다. 감정의 오디오가 서로를 덮어가며 물린다. 잠시 꿈처럼 열린 이 대지 위에서 더이상 이들은 퍼즐을 맞출 필요도, 포커 게임을 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동안 함께 울지 못해온 시간들과 함께 웃지 못해온 시간들을 보상하듯 서로의 목소리 위에 서로의 목소리를 덮어간다.
“다음에 제 집이 생긴다면 그 때 갖다 버리도록 하겠습니다.”
형은 다시 호주로 출국하고, 동생 부부는 일상을 이어간다. 형의 짧은 입국을 계기로 열린 해방의 시공간이 닫히려 한다. 아니, 그것은 닫혀야 한다. 상자를 열고 그 안을 확인하고 다시 닫고 이야기를 맺는 것. 이 모든 일은, 남은 이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낡은 집의 유령처럼 끈덕지게 따라붙던 상흔을 버리고 나서야, 우리는 ‘내 집'을 가질 수 있다.
*
영상을 시청하고 나오는 길, 다시 입구쪽 공간의 사진들을 본다. 사진들이 더이상 평범한 일상의 스냅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이 스냅들은 우리가 ‘평범한 일상’이라 부르는 그 표면을 떠받치고 있을 삶의 두께를 생각하게 한다. 지금 눈앞의 ‘평범한 일상’으로 보이는 이 사진들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을 떠받치고 있던 삶의 두께로 녹아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표면에는 또 새로운 이미지들이 꿈처러, 운명처럼, 혹은 재앙처럼 둥실 떠오르겠지.
그러고 보면 삶의 ‘두께’란, 그 ‘표면’과 구분된 독립적인 구조가 아니라 적층된 표면들의 총합인지도 모른다. 작가 김용선의 업業은, 표면이 두께로 녹아들어가기 전에 이 순간을 가시화(7)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의 개입하는 것이다. 사라지기 전에 기념하는 일.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시선’에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주체적인 행위인지도 모른다.
1 세상에 널리 통하는 일반적인 풍속.
2 김용선 작가
3 김용선 작가는 매체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처럼 보인다. 그에게 있어 사진기는 대화의 수단일 수도, 사랑의 수단일 수도, ‘삶'의 수단일 수도 있다. 사적인 자리에서 그는 ‘좋은 사진은 그것이 사진임을 드러내지 않고 찍혀진 대상 자체에 시선을 집중시킨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언뜻 듣기에는 상식적이다 싶은 이 말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근래의 예술계에서 매체를 다루는 태도와는 결이 좀 다른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에서는 소위 ‘회화성'을 연구하는 회화, ‘조각성'을 연구하는 조각, ‘신체성'을 연구하는 퍼포먼스 등에서 느껴지는 자기지시적인 공허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사진성'에 대한 관심으로 창작하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삶'이다.
4 구로동 429-xx번지
5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들이 서로의 기억을 맞춰보는 이 시간을 ‘퍼즐 맞추기'보다는 ‘포커 게임'에 비유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의 패들을 전부 꺼내어놓지 않는다. 신중하고도 정확하게, 공유해야 할 카드와 덮어두어야 할 카드를 구분해가며 함께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간다.
6 이 씬에서 쇼팽의 <Etude op 25 no.5>가 BGM으로 깔린다. 통칭 ‘Wrong Note’로 불리는 이 연주곡은, A-B-A의 수미상관 형으로 구성되어있는데, A파트에서는 불협화음을 활용하여 불안정하고 기괴한 느낌을 주며, B파트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화성을 들려준다. 아버지에 대한 회상을 중심으로 한 첫 시퀀스에서 가족들과의 시간을 중심으로 한 두 번째 시퀀스로 넘어가는 이 씬에서는 ‘Wrong Note’ 중, A에서 B로 넘어가는 부분이 삽입되어있다. 하필 Wrong Note의 이 부분을 여기에 삽입한 것은 어둡고 불안정한 내용의 시퀀스에서 밝고 화목한 내용의 시퀀스로 넘어감을 고려한 안배였을 것이다. 이 안배는 영상 최 후반부의 크레딧의 연출을 위한 복선으로 보이기도 한다. 호주로 돌아간 형과의 영상 통화를 담고 있는 이 쿠키 영상은 두 가지 징후적인 측면을 보인다. 첫 번째는 Wrong Note가 다시 삽입되었다는 점이다. 다만 위 씬에서 삽입된 부분이 아닌, 안정적인 화성에서 불협화음으로 넘어가는 B-A의 파트가 삽입되어있다. 또 한가지 징후적인 부분은, 이 가족을 잉태하게 된 근본적인 사건인 어머니 아버지의 결혼식 영상을 제외하고는 이 크레딧 부분만이 칼라로 처리되어있다는 점이다. 이 쿠키영상에서 형과 나누는 대화는, ‘어머니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내용이다. 이 대화만을 불협이 얹힌 칼라영상으로 연출 한 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고 느껴진다. 속편에 대한 복선일 수도 있고.
7 혹은 ‘기념’. (18min 17sec)
김동규 / 작가 기획자